프롤로그(작성시 레벨2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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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판타지물 프롤로그

Lv.2마탄타슬람 0 102 2018-11-05
정상(正常).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어 제대로 인 상태.
있어야할 상태에 바로 있는 것.

하지만 19살 소년 이한율의 모습은 그 정의에 부합하지 않고 있었다. 새벽의 장막이 여명을 아직 감추고 있는 시간. 경비원만이 교정에서 빗자루질을 하는 때에 그는 나타났다.

"학교생활이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수능이 끝났다고 해서."

그는 입김을 내뿜으며 텅 빈 교실을 혼자 쓸고 닦기 시작했다. 비정상은 아니지만, 평균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 모습. 그런 이한율은 반장이었다.

'이것이 나의 책임.'

그 누구도 부탁하지도 지시하지도 않았다. 교실과 복도의 정리는 그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신화연 07 : 00
김윤후 07 : 00
홍길동 08 : 10
김철수 08 : 05

강미희 : 불명. 13시 전후.
……

6시 55분. 5분 후면 도착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머리를 정리하고 교실도 마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학급의 평균 등교 시간을 정리한 수첩. 하루하루의 평균을 모두 더해서 매일 최신화하는 그의 업무 도구였다.

책상을 다시금 정렬하던 그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살폈다. 평소보다 너무 가벼운 것이다. 그러나 문제집과 국어사전은 그대로 꽂혀있었다. 신화연의 책상이었다. 고개를 갸웃한 한율은 세 개의 책상을 한꺼번에 들어보았다. 마치 깃털처럼 가볍다. 자신의 근력의 한계를 알고 있던 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부우웅

교정의 정적을 깨는 교직원들의 차량 진입.

운전석에 앉은 대머리 선생님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시력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 얼굴을 인식하기에는 먼 거리임은 확실했다.

그리고 자가용의 행렬 가운데, 홀로 이질적인 존재가 나타났다. 매일 있는 이벤트였지만,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항상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3년에 걸친,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꾸준한 자기어필 때문이었다.

"우하하하 ! 에쿠스 얻어타고 오늘 교통비 1,100원 절약 개꿀! 항상 고마워, 윤후야!"
"어, 응. 에, 헤헤헤…."

긴 생머리의 소녀는 자그마한 소년을 품에 꼭 안고 흔들어댔다. 그녀의 단련된 팔뚝과 다리가 젊은 소년을 자극했다. 김윤후는 폭발할 것 같은 두 가지를, 각각 마음과 몸으로 부여잡고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한율의 입꼬리는 한 쪽만 말아올려졌다.

쓴웃음이었다.

윤후와 화연의 엇갈린 방향성은, 제 3 자에게는 충분히 뚜렷하게 보였다.

윤후는 화연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봐도 알 수 있었다. 등하교를 이따끔 같이 하면서, 방금처럼 자신이 아닌 이한율을 보자마자 태도가 더욱 밝아지지 않았던가. 그는 송곳니로 아랫입술을 붙잡았다. 타들어가는 마음에 비례해 애꿎은 입술만 고통받고 있었다.

곧 갈고 닦은 길 위로 교우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책가방을 챙겨온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교복을 입은 사람도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대학 수학 능력시험.

대한민국 의무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그동안 보낸 12년을 평가받는 중요한 사회적 통과 의례. 그것을 마쳤기에 아무도 진중하게 등교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누구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을 세상. 그렇기에 튀어나온 못인 한율의 모습은 그들에게 조소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와, 너 수능 끝난 날에도 새벽에 나왔어? 너도 진짜 대단하다. 와."
"왜, 좋잖아. 덕분에 우리 반은 청소당번 같은 거 없고."
"진짜 독종이긴 독종이야."

그리고 그 분위기를 가르는 한 소녀가 있었다. 맑은 눈동자와 미모와 대비되는, 굳은 살이 역력한 손바닥이 특징인 신화연이었다.

"한율아, 안녕 ! 나 어제 수능 찍고 잤어 ! 77777로 맞추고 다 맞춘 사람한테 피자 쏘기로 했어 !"

교실에 들어선 것은 밀물처럼 한꺼번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해바라기가 되어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단의 구석에 피어난 작은 꽃인 김윤후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런 화연의 빛줄기는 이한율만을 향하고 있었다. 윤후의 낯빛에 잠시 잿빛이 스쳐지나갔다.

"아무리 학비 낼 돈이 없어도 그렇지. 너무 한 거 아니냐? 그렇게 자기 인생에 무책임하게 굴어도 돼?"
"솔직히 생각해 봐. 어차피 대학교 가봤자 4년 낭비하고 돈은 돈대로 버리고 아무런 어드벤티지도 없잖아. 교수나 학자가 될 게 아닌 이상. 그 딴 거에 낭비할 시간 없어 ! 그런 녀석들이 이 거대한 거인을 품을 수 있을리가 없지 ! 무작정 상경하면 성공할거야, 아마도."
"하긴 너는 엄마 아프셔서 부양해드려야하니까…."

한율은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뚜렷한 목표는 없었지만 그녀의 기세와 환경에는 제동을 걸 수 없었다.

"응. 엄마 아프잖아. 암으로. 돈이 엄청 많이 든다고. 그러니까 이런 데서 시간낭비 할 시간 없어."

그녀의 말에는 어둠이 있었지만, 낯빛에는 그저 빛이 쏟아져나올 뿐이었다. 윤후는 잠시 입을 열려다가 이내 안으로 눌러삼켰다.

'치료비, 빌려줄 수 있는데.'

그의 지갑에는 로마 군인의 얼굴이 세겨진 검은 카드가 있었다. 아메리칸 엑스프레스 센츄리온. 혹은 블랙카드로도 불리우는 속칭 '부자카드'. 비록 세간의 명성과는 달리 이제 부호들에게는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징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일개 고등학생이 가질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차마 그것을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적어도 내 힘으로 도와줄거야. 아직은 남은 유산이 있어서 괜찮아. 하지만 곧 한계일 테니까. 그 이 후부터는 내가 모은 걸로 감당해야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서 선언하는 신화연. 윤후는 저 태양에 찬물을 던질 수 없었다. 아마 녹아내리겠지. 양지에 꽃들이 모여들듯 화연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수능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무너진 그 곳은 하염없이 웃음꽃이 꿀을 흘러보내는 화원이었다.

"아까 집에서 나오는데 몸이 묘하게 가벼웠어! 일주일 전까지 하던 상하차 알바. 단련되어서 쓰러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항상 몸이 뻐근했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 거 있지!"
"기분 탓 아니야?"
"운동을 극한으로 하면 고통을 못 느끼는 경지?"
"에이. 그건 좀 나갔다. 그냥 잠자면서 회복 한 거 겠지."
"저기, 나도. 그. 그런 거 있었는데."

윤후가 겨우 말을 꺼냈지만 곧바로 말의 홍수에 묻히고 말았다. 워낙 신화연의 에너지가 강한 탓에 사람들의 기운에 지워진 탓이다. 그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이한율이 거들고 나섰다. 학급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하는 것. 이 또한 그에게는 반장의 책임이었다.

"그게 뭔데?"
"아니, 그, 그냥. 아빠 네 회사에서. 이, 일을 했는데. 별로 안 피곤. 안 피곤 했어. 무거운 쇳덩어리들 끙끙. 끙끙대면서 날라, 날라다놨는데."

학급에서 가장 동안인 소년은 더듬거리면서도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이한율은 아빠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랑 같네, 화연아?"
"그래? 역시 우리는 통하는 게 있다니까! 우린 친구니까?"

윤후는 잠깐 낯빛이 환해졌다가, 차회에 이어지는 그녀의 정의에 그대로 굳었다. 한율은 속으로 쓴웃음 섞인 한숨을 쉬었다. 엇갈리는 시야. 엇갈리는 마음. 한율은 생각했다. 화연은 누구를 보고 있을까 하고.

"그, 그래!"

아직까지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근성에 제 3자인 한율은 박수를 마음으로 보냈다.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싫어한다면 스킨십 행위 자체를 하지 않을테니까. 물론 애정이 있는 접촉이 아닌, 남자끼리 흔히 하는 장난을 따라 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놀고 있어라."

어수선한 상황을 수습해야할 담임 선생은 한 마디만 내던지고 다시 돌아갔다. 수능이라는 첫번째 관문을 넘게 한 그러자 교실은 교실이 아닌, 만남의 광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젊고 싱싱한 꽃들이 가득한 화원에 새로운 이가 발을 딛었다. 그들의 활기가 얼마나 신선한지. 그녀의 출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의 한 풀이에 집중했다. 12년간 억눌린 자유에 대한 해방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흑발흑안에서는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만이 홀로 다른 세계에 있는 듯 했다. 어깨죽지까지 닿는 검붉은 머리칼. 잔근육이 드러나있는 팔다리가 인상적인 소녀는 발을 딛자마자 한율에게 다가갔다.

"왔어. 그리고 갈게."

건조하게 통보할 뿐인 소녀의 말에 한율은 어깨를 으쓱하며 응대했다.

"오늘은 이제 해방의 날이니까 얘기 안 해도 괜찮잖아, 미희야?"
"너니까."
"반장이라서 알려준다는 뜻이지 그거?"
"아니."
"그럼?"
"……."

강미희는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고 대화를 잇지 않았다. 가면을 쓴 것처럼 그녀의 낯빛은 변하지 않았다. 윤후는 입을 열려는 듯, 입술을 우물우물거렸지만 이내 화연이 나서면서 일단락되었다. 그 망설임을 알아챈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이한율 뿐이었다.

"수능 끝나는 날까지 뭐 하고 다니는지 안 알려줄거야?"
"응."
"너무해! 하지만 스타일 괜찮은데 어디 연예인하러 소속사라도 다니는 거야?"
"미안. 말 못 해."

화연이 미희의 등 뒤에서 달라붙으며 밝게 물었지만 철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미희는 변하지 않는 철옹성의 모습으로 외적을 물리치고 있었다. 결국 항복한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연락은 하고 지내야 한다?"
"응."
"같은 여자애끼리 화장실도 같이 못 가보고, 체육수업도 같이 못 받아보고. 못 한게 너무 많네. 아쉽지만 잘 가렴."
"응."
"아, 직, 아, 아직 졸업식도 안 했어! 벌써 떠나보내지 마!"
"상관 없어."

감정과 감정의 주고 받음. 익숙하게 그녀를 떠나보내려던 순간, 미희의 가방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기본 벨소리였다.

"…이건."

미희의 낯빛이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세 사람은 당연히 마음과 고개를 함께 갸우둥 할 수 밖에 없었다. 항상 감정을 감추는 듯한 건조한 태도. 표정의 변화도 좀처럼 없다. 그런 그녀의 기색이 1년만에 처음으로 다르게 변한 것이다. 모두가 호기심을 언으로 엮어내려고 할 때에, 미희는 전화를 받아들였다.

"예, 실장님."
'실장?'

직장이라도 다니고 있는 건가? 한율은 그렇게 생각하며 오른쪽 눈썹을 까딱거렸다. 아직 자신들은 졸업식을 치루지 않았다. 엄연히 말하자면 최종 학력은 아직 중졸. 그러한데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하물며 이곳은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니던가.

"……."

미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왼손을 꽉 쥐었다. 그것을 보고서 그들은 더욱 의문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나오겠습니다."
"저기, 미희야?"

미희는 화연의 보기 드문 진지한 부름을 뒤로 한 채, 복도의 창문으로 뛰어올랐다.

"어어?"
"야, 너!"
"미희야!"

붙잡을 사이도 없이 미희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두 번의 발돋음으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투신(投身)에 교실은 소란스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젊고 밝은 화원(花園)이 한 순간에 시장통이 되었다.

"야, 119 불러! 미희가 뛰어내렸어!"
"아니야, 잠깐만! 밑에 아무것도 없잖아! 핏자국도 없고!"
"뭐야?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선생님 불러와!"

학급의 일원들은 하나가 되어 밑을 내려다보았다. 벽에는 손으로 긁거나 짚은 흔적도, 창문가의 발자국도 없었다. 쓰러져 있는 미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단, 잔디밭 한 가운데에 신발 모양의 모래자국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미희야, 네 성격이 원래 그런 건 알겠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냐."

한율은 이마를 짚고 고개를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선 행동 후 해명. 아니, 그녀는 그런 해명조차 평소에 하지 않았다.

'말 할 수 없음.'
'극비사항.'
'미안.'

언제나 비밀.

언제나 침묵.

평소에도 수업일수를 훌쩍 뛰어넘는 결석을 해왔다. 나머지 출석일수도 절반은 점심 이 후의 등교. 그의 수첩에는 총 80일의 제대로 된 출석만이 체크되어 있었다. 그러나 학년주임 선생님의 경고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성적은 언제나 평균에 머물러있으니, 반장인 그도 깊게 물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한율도 이 투신 사건은 전혀 상정 외의 것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와, 나도 뛰어볼까?"
"너까지 무슨 소리야! 이리로 와!"
"아, 안 돼! 죽어, 죽, 어! 잘, 잘못하면!"
"그치만 쟨 안 죽었잖아?"

히죽히죽 웃으며 창문 틀을 붙잡은 화연의 돌발행동. 두 사람도 필사적으로 끌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 장난이었는데, 하며 입꼬리를 올리는 신화연의 언행에 한율의 머릿속은 더욱 달아올랐다. 수능 시험 다음 날의 일이다. 학업 스트레스? 아니면 학업을 소홀히 할 정도로 생활하는 다른 세계에서의 생활에서 겪은 문제? 애초에 어떤 내용의 이중 생활을 하는지도 모르지 않나? 윤후가 빨개진 얼굴로 화연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는 사이, 이한율은 결론을 내렸다.

'계단으로 내려가서 우선 확인부터 하자.'

그는 교복의 겉옷을 챙겨들고 다시 걸음을 돌렸다. 윤후가 어디를 가느냐며 물음을 엮어내려던 순간이었다.


에에에에에에엥 !!!

"국민 여러분, 여기는 행정안전부 민방위경보 통제소입니다! 현 시간부로 우리나라 전역에 실제 공습 경보를 발령합니다! 현 시간부로 우리나라 전역에 실제 공습 경보를 발령합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계적인 음성.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세이렌의 앙칼진 노랫소리는 모두의 머릿속을 하얗게 물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세이렌의 유혹을 받은 사람들은 곧이어 앞다투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비켜! 빨리 가야 해!"
"도망 가!"
"야, 밀지 마! 악!! 발 밟지 말라고!"

비명. 함성. 고함. 아귀다툼. 발길질. 주먹질. 밀쳐내기.

배움의 터, 학교는 더 이상 배움터가 아니라 피난민의 생존 경쟁의 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하얗게 굳어서 멈춰서는 사람. 전화하는 사람. 미희처럼 뛰어내리려는 사람. 인간 군상의 삼라만상이 그 곳에 펼쳐지고 있었다. 책임을 가지고 학급을 인솔하려던 한율은 이내 체념했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누가 와도 통제가 불가능할 거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가까이에 있는 가장 친한 친우들부터 손 안에 넣기로 결심했다.

"윤후, 화연아. 같이 가자."
"…난 괜찮은데."
"어떻게 하지, 누나, 아니, 아빠랑 누나는 괜찮, 을 거야. 근데 나, 나는 어쩌지. 나도 데려가줬으면."

식은 땀을 흘리며 벌벌 떨기 시작하는 윤후. 평소와는 달리 소란스러워지자 거꾸로 차분해진 화연. 한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주먹을 꽉 다 쥐었다. 부모님은 군인이다. 침범한 외적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역설적으로 전쟁터에서 가장 안전한 건 민간인보다 군인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미친 한율은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대피소로 가자. 지하철. 지하철로 가는 거야."

그렇게 소년과 소녀의 두 팔을 잡고 끌고 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이변이 덮쳤다.

콰쾅 !!

두 팔로 눈을 가릴 새도 없이, 갑자기 눈 앞에서 빛이 번쩍인 것이다. 뒤늦게 반사적으로 팔을 지켜 올렸지만 이미 뜨거운 화마가 무심하게 그 곳을 심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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